
대학생 시절의 일이다.
한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사람들과 가까워지고, 자연스럽게 앞에 나설 기회도 많아졌다. 사람들에게 조금 더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분위기를 재미있게 만들어 보고 싶어 나름대로 유머스럽게 행동할 때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젊은 시절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시절 나를 바라보던 두 선배의 모습이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다.
두 사람은 같은 나를 보고 있었지만, 나를 대하는 태도는 전혀 달랐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준 사람
한 선배는 내가 사람들 앞에 나서거나 재미있게 이야기해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조금 부족해 보여도, 때로는 지나치게 의욕적으로 행동해도 나를 있는 그대로 대해 주었다.
돌이켜보면 그 선배가 나에게 특별히 대단한 말을 해준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나를 편안하게 대해 주었다.
그 사람 앞에서는 굳이 나를 증명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었다. 내가 나답게 행동한다고 해서 싫어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런 관계 속에서 나는 조금씩 자신감을 얻었다.
누군가의 인정은 이렇게 사람의 마음속에 자신을 긍정하는 힘을 만들어 준다.
반대로 나를 작아지게 한 시선도 있었다
다른 한 선배는 달랐다.
내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을 좋지 않게 바라보는 것 같았다. 내가 조금 적극적으로 행동하면 못마땅해하는 느낌이 들었고, 때로는 그것을 말로 표현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경험이 반복되면서 나는 점점 나 자신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내가 사람들에게 불편하게 보이는 건 아닐까?”
“조용히 있는 것이 더 좋은 건가?”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말 한마디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 말을 듣는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그 시선과 말이 내 안으로 들어와 어느 순간 내가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 있게 행동하다가도 주저하게 되고, 다른 사람의 표정을 살피게 되는 순간들이 생겼다.
30년이 지나서야 보이는 것
세월이 흘렀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하고, 사람을 가르치고, 수많은 사람을 만나며 살아왔다.
그런데 놀랍게도 30년이 지난 지금도 두 선배가 나를 바라보는 방식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한 사람은 여전히 나를 나답게 바라본다.
또 한 사람은 여전히 과거의 어느 시점에서 보았던 나의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제는 한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다.
그때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내가 흔들렸다면, 지금은 그것이 그 사람의 시선이지 나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을 깨닫는 데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람은 관계 속에서 자신을 배운다
치유를 공부하면서 나는 사람의 마음을 이전과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사람은 혼자서 자신을 만들어 가는 존재가 아니다.
부모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선생님이 나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친구와 선배가 나를 어떻게 대했는지가 쌓이면서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생각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관계는 중요하다.
누군가 나에게 “너는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직접 말하지 않아도 된다.
그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그 사람다운 모습을 존중해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전달될 수 있다.
반대로 반복되는 비난과 비교, 무시하는 표정과 말은 상대방에게 전혀 다른 메시지를 줄 수 있다.
“너는 지금 모습으로는 부족해.”
그 메시지가 오래 반복되면 어느 순간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스스로에게 그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인지도 모른다.
치유는 과거의 시선에서 벗어나는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사람의 평가를 받는다.
잘했다는 말도 듣고, 부족하다는 말도 듣는다.
때로는 누군가의 말 때문에 오랫동안 자신감을 잃기도 한다.
정말 나의 것일까?
어쩌면 어린 시절 부모의 말일 수도 있고, 학창 시절 선생님의 평가일 수도 있다. 또는 오래전 친구나 선배가 나에게 던졌던 한마디일 수도 있다.
그것을 알아차리는 것부터 회복은 시작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만들어 놓은 평가를 평생 나의 모습이라고 믿으며 살아갈 필요는 없다.
그때의 나는 그때의 나였고, 지금의 나는 수많은 경험과 시간을 지나 여기까지 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제 내가 누군가를 바라보는 사람이 되었다
30년 전에는 내가 선배들의 시선을 받는 후배였다.
지금은 다르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선배이고, 스승이며, 때로는 한 사람의 성장을 돕는 위치에 서 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다.
내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한 사람에게 얼마나 오래 남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를 가르치는 부모와 교사, 지도자라면 더욱 그렇다.
“너는 원래 그래.”
“쟤는 잘하는데 넌 왜 못하니?”
말하는 사람은 금방 잊을 수 있다.
하지만 듣는 아이는 그 말을 오랫동안 자신의 모습이라고 믿으며 살아갈 수도 있다.
반대로,
“나는 네가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
“너는 너만의 좋은 점이 있어.”
이런 말과 태도는 한 사람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마음의 힘이 될 수 있다.
사람을 세우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니다
30년 전 두 선배가 나에게 가르쳐 준 것이 있다.
사람에게 영향을 주는 것은 대단한 지식이나 화려한 말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사람을 세울 수도 있고,
그 사람을 작아지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요즘 사람을 만날 때 한 가지를 더 생각하려고 한다.
‘나는 지금 이 사람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내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꾸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그 사람이 가진 가능성보다 부족한 점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사람을 세우는 교육도 여기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바꾸려고 하기 전에 먼저 그 사람을 한 사람으로 존중해 주는 것.
그리고 지금의 모습만으로 그 사람의 가능성을 단정하지 않는 것.
어쩌면 치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상처가 전혀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 누군가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자리에서 벗어나 다시 자신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
그리고 내가 받은 좋은 시선을 다시 다른 사람에게 건네주는 것.
30년 전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었던 한 선배의 태도가 아직도 내 안에 남아 있는 것처럼, 오늘 내가 누군가에게 보내는 따뜻한 시선 하나도 그 사람의 삶에 오래 남을 수 있다.
어쩌면 그 사람이 내일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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